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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는 과연 스스로 지킬 힘이 있는가??
작성자 Kim Eun Ha 작성일 2012-05-09 조회수 3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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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년 당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한다. 이미 세 번을 침범한 수나라는 깊은 패전의 상처로 왕조마저 무너진 터였다. 대군은 안시성에서 고구려 군과 맞닥뜨린다. 하루 대여섯 차례의 파상 공세가 수개월째 이어졌지만 성은 난공불락이었다. 병사와 백성이 한마음으로 지킨 까닭이다. 태종은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고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는 안시성에 비단 300필을 포상하는 호기를 부린다. 그렇게나마 패전의 굴욕을 가리고 싶었던 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고대사의 한 페이지다. 책장을 넘기면 사정은 달라진다. 병약한 조선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온 나라가 말발굽에 짓밟힌 병자호란의 기억이 어른거린다. 쇠락과 망국의 어둠이 내리는 시기다. 1637년 인조는 남한산성을 나와 청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한다. 엄동설한에 가마도 타지 못한 채 맨발로 한강 나루터까지 걸어간다. 진흙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태종에게 세 번을 절하고 아홉 번이나 머리를 조아린다. 그보다 앞서 조선은 고작 3만 군사에 두 손을 드는 정묘호란의 치욕을 겪는다. 백만 대군을 물리쳤던 민족이 한낱 변방의 소국에 나라의 운명을 희롱당하는 신세로 추락한 것이다. 당시 청의 인구는 60만에 불과했다. 작은 오랑캐 나라가 1000만 조선을 삼킨 것이다. 원인은 멀리 있지 않았다. 전란에 대응하는 국민의 준비와 자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청은 엄격한 호구제도를 통해 빈틈없이 인적자원을 관리했다. 자녀가 태어나면 국가에 반드시 보고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놀고먹는 사람은 없는지 자세히 적어 병적기록에 올린다. 16세가 넘은 남성은 예비 병정으로 뽑아 군사훈련을 시킨다. 변방소국은 이렇게 군사대국으로 힘을 키웠다. 청과 국경을 마주한 조선은 딴판이었다. 태평세월이 마냥 이어질 걸로 믿었다. 전쟁에 대비하자는 목소리가 없진 않았으나 그때마다 백성들은 불만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적이 날아서 강을 건너겠는가? 왜 공연히 백성을 괴롭히느냐.” 낙동강 옆 고을에 성을 쌓으라는 지시가 내려지자 한 선비가 내뱉은 거친 항변이다. 당나라 침입에 대비해 천리장성을 쌓은 고구려와는 너무도 대비되는 풍경 아닌가. 그런 자세가 나라의 흥망을 갈랐다. [이 게시물은 SIT(주)님에 의해 2013-01-22 09:57:45 질문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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